곽선희목사 설교 중에서(재생시간 3분15초)
逸 士 遺 事
바느질로 두 자식을 잘 가르쳐 진사에 급제시키고 임종을 맞으며 두 아들을 불러 앉히고 은이 가득한 솥을 취하지 않고 도로 묻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취하시지 않았습니까" 라는 물음에 어머니는
"財는 災다.
아무런 노력없이 큰 재물을 얻으면 반드시 뜻밖의 재앙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이 나서 마땅히 궁핍한 것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너희들이 어릴적부터 의식의 안일에 습성이 들면 공부에 힘쓰지 않을 것이요
만약 가난하고 어렵게 자라지 않으면 어찌 재물이 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겠는가.
그래서 내가 집을 옮겨 스스로 단념한 것이다.
지금 집에 저축된 약간의 재물은 모두 나의 열손가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니
창졸간에 눈앞에 닥친 재물과는 비할 것이 아니다. 하고 숨을 돌렸다.
물론 그 은솥이 묻힌 집을 끝내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金學性, 1807~1875
본관 청풍. 자 경도(景道). 호 송석(松石). 시호 효문(孝文). 참판 동헌(東獻)의 아들.
1828년(순조 28)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33년 대교(待敎), 1841년(헌종 7) 대사성,
이듬해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1844년 예방승지 ·이조참판, 1848년 한성부판윤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
1849년 철종 즉위 후 호조판서를 지냈다. 그 뒤 우참찬(右參贊) ·형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거쳐,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뒤에도 계속 중용되었다.
1864년(고종 1) 의금부판사 ·규장각제학 ·홍문관제학 ·상호군(上護軍) ·좌찬성, 평안도관찰사 ·중추부판사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편저에 《청풍김씨세보(世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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