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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야기 2022. 6. 15. 01:39

오랜기간 소식 못드려 죄송합니다.

휴면 계좌에서 여러 날의 노력 끝에 겨우 살려냈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로서 게속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America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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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연료 전기차를 현대차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상용차를 시판한다고 합니다. 


11월20일 LA컨벤션센터의 LA오토쇼에 수소연료전기차를 전시하는데 첫 수소 차는 투산 SUB라고 합니다.




http://www.freep.com/article/20131115/BUSINESS0104/311150114/Hyundai-John-Krafcik



http://www.latimes.com/business/autos/la-fi-hy-fuel-cell-cars-20131117,0,5007194.story#axzz2l0QNEBmd


http://www.reuters.com/article/2013/11/15/us-autos-hyundai-idUSBRE9AE13Y20131115

Posted by America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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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 발행되는 미주중앙일보의 일간프러스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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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보유 재산은 7천억원이다”…BBK 김경준 가주 법원 제출 서류서 주장 

[LA일간플러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379565

재미 블로거 안치용씨 책서 폭로해
기사입력: 03.21.12 07:51


"BBK 주가 조작 사건’의 당사자인 김경준씨가 가주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이 7천억원에 달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씨는 20일 자신의 블로그에 최근 출간 예정 도서인 <대한민국 대통령-재벌의 X 파일 시크릿 오브 코리아>에 실린 일부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런 사실을 밝혔다. 

김경준씨는 미국 법원에서 벌어진 BBK 투자금 반환소송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재산 내역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씨가 밝힌 이 대통령의 재산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재산 규모와 크게 차이가 난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도곡동 땅과 비비케이, 다스 등의 실소유주가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인 이 대통령의 재산 환원은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대통령은 이 약속에 따라 취임 2년차인 2009년 8월 331억원을 출연해 청계재단을 설립한 바 있다. 청계재단 출연 전 이 대통령의 ‘2009년 고위 공직자 재산변동 신고내역’은 356억9182만원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11년 3월에는 ‘2010년 고위 공직자 재산변동 신고내역’에 54억9600만원을 신고했다. 안씨가 7천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한 것과 크게 차이가 나는 액수다. 

안씨는 책에서 이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논란이 일었던 다스 사건과 관련해 이 대통령이 실소유주는 아닌가 의심하게 하는 증거도 제시했다. 

안씨는 “MB의 ‘집사’로 알려진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2002년 7월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에게 팩스를 보내 다스 투자금 반환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했었다”고 밝혔다. 

또 김백준씨가 자신이 다스를 대리한다며 장용훈 옵셔널벤처스 사장에게 접근해 미국 소송에서 다스와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요구했었다는 것도 폭로했다.

안씨는 “김백준씨가 MB가 단 한 주의 주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다스를 대리한 것은 다스의 실소유주가 누군지 의심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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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가 어떻고 세상이 어떻고 하지만 아직은 그래도 이런 기사를 쓰는 기자가 있고 이런 글을 실어 주는  한겨레신문이 있어서 살 맛 납니다.

한겨레 신문에서 모셔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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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발] 정치검찰, 너에게 새 이름을 붙여주마 / 김이택

[한겨레] 자기 밥그릇 넘보는 자는 피를 봐서라도 보복하고, 권력에 줄 대며, 
칼을 주로 쓰는 닮은 집단이 있다.   
기사입력 2012-03-01 19:55 

노무현 정부 초기 ‘검사와의 대화’ 직후 ‘검사스럽다’는 말이 유행했다. 지금도 네이버 전자사전을 치면 ‘행동이나 성격이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논리 없이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는 데가 있다’라는 설명이 등장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단연 ‘정치검찰’의 활약이 눈부시다. 별명도 따로 지어줘야 한다. 뭐가 어울릴까?

정치검찰의 특징부터 보자. 우선 ‘줄서기’에 능하다. 어디에 ‘힘’이 있는지 귀신같이 알아내는 것은 필수.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해야 살아남는다는 게 몸으로 익힌 생존 철학이다. 그래서 이 정부 초기 인사권자의 의중을 헤아려 끈 떨어진 이전 정권 인사들에게 그렇게 가혹하게 칼질을 해댔다.

일단 가야 할 길이 보이면 물불 가리지 않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겁없이 덤비는 자들에 대해선 정치권이고 언론계고 영역 불문에다 수단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안마시술소 카드사용 내역도 무기로 삼고, 사돈의 팔촌까지 친인척을 불러다 조지는 건 기본이다. 형평이고 정의고 다 부질없는 소리, 남들의 손가락질에도 눈 질끈 감고 잠시의 쪽팔림만 참아내면 된다. 몸을 던진 만큼 응분의 보상이 주어지는 ‘기브 앤 테이크’는 이 바닥 거래의 기본이기 때문. 그래서 <피디수첩> 피디들을 기소한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의 요직을 꿰찼고,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배임죄로 엮은 부장검사도 다음 인사에서 법무부로 영전했다. 그 위의 차장검사들 역시 법무부와 대검의 요직으로 발탁돼 갔다. 무리한 수사로 무죄가 나와도, 조직 내부에서조차 손가락질을 해도 확실하게 뒤를 보장받았다. 이보다 더 믿을만한 거래가 어디 있겠는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남다르다는 것도 이들의 특징. 조직이 침탈당하는데 가만있으면 칼잡이의 도리가 아니다. 이 한몸 바쳐서라도 막아야 한다. 검찰 조직 손보겠다는 야당에 적극 동조했던 여당 의원을 겨냥해 총선 코앞에 성매매 사건을 다시 들춰내는 지저분한 일에도 망설임이 없다. 비명에 간 전직 대통령 딸을 향해 욕먹을 각오 하고 다시 칼을 빼든 것도 다 조직 보호를 위한 일이다. 총선 뒤 우리 조직을 대대적으로 손보겠다는데 그런 야당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 칼잡이 최고수들이 모인 대검 중수부가 총대를 메는 게 당연하다.

자기 밥그릇, 즉 ‘나와바리’를 넘보는 자는 피를 봐서라도 보복하고, 이권 지키려 힘센 권력에 줄 대는 건 당연시하며, 큰 칼을 주무기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들과 꼭 닮은 집단이 대한민국에 딱 하나 있다. 어렵다는 사법시험 패스하고, 때로는 남의 눈총을 받아가며 넉넉잖은 월급에도 밤샘을 일삼아 하는 대다수 검사들까지 매도될까 차마 그 이름은 붙여주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무모한 칼질 끝에 부엉이바위 아래 아직도 핏자국이 선연한데 3년상도 지나지 않아 그 유가족을 인질로 잡겠다고 다시 나선 정치검사들은 검사로서의 금도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염치도 상실했다고 나는 본다.

‘조폭 검찰’, 그들에겐 그 이름조차 아깝다. 영화 <친구>의 조폭 두목(유오성)도 “쪽팔리기 싫어서” 구차한 변명 늘어놓지 않고 중형을 감수했다. 조폭 사회에서도 선을 넘거나 의리를 저버린 삼류 조폭에겐 다른 이름을 붙여준다. 양아치라고. 유오성이 선생님한테 맞을 때 내뱉던 그 양아치 말이다.

그러나 칼도 잘못 쓰면 결국 자기가 당하는 법. 양아치들이 벌건 대낮에 여의도 한복판에 뛰어들어 큰 칼을 마구 휘두르는데 가만히 두고 볼 국민이 어디 있는가. 잠시 겁먹은 것 같아도, 속은 것을 알면 그 칼이 바로 그대들을 향할 것이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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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얼마 남지 않은 며칠 동안에도 잘 마무리 하시고 희망 찬 2012년을 맞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블로그 운영자님 감사 드립니다.
사랑과 격려 해 주신 이웃 님 감사 드립니다.
가끔씩 찾아 주시는 방문자님 감사 드립니다.
 
금년 후반 부터 일상의 업무가 너무 바빠서 포스트를 거의 못 올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중히 사과 드립니다.

새해에는 열심히 포스트 꾸미려고 합니다.

 
 새해에는 생각하시는 일들이 생각대로 잘 되어지고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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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어디로 가지

황망하고 애통한 마음에 손끝의 떨림을 멈추지 못하겠습니다.

그토록 밝게 빛나던 당신의 미소는 이제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겠네요. 2005년, 우리가 처음 방송아카데미에서 조우했을 때. 당신의 눈빛은 야구와 방송에 대한 열정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광채를 숨길 수 없는 흑진주'. 당신이 내게 남긴 첫 인상은 그랬습니다.

한때, 당신은 그토록 바라 마지 않던 '국내 최초의 여성전문 야구중계캐스터'의 꿈에 성큼 다가선 것처럼 보였습니다. 당신은 스포츠케이블TV의 아나운서로, 나는 야구기자로, 2007년 현장에서 다시 마주섭니다. 그때 당신은 "지금 너무 행복해" 라고 활짝 웃었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며 각자의 꿈을 위해 우리는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말이라니. 힘들 때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다'는 야구 명언을 되새기던 당신이었는데. 꿈을 위해 함께 걷던 동료이자, 당신이 '믿을만한 오빠'라 부르던 나로서는 미안하고 애통한 마음에 한숨만 내쉽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그대가 보낸 메시지가 결국 마지막 도움의 요청이었습니다. 그 때 나에게 "나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막막하기도 하고…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인데 이젠 다 떠났겠지. 빨리 해명을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나 이제 어디로 가지?" 기자를 울린 송지선, 그녀의 마지막 문자  스포츠조선=이원만 기자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한국의 스포츠는 잘 모르지만 너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나 이제 어디로 가지?” “L.A.로 오면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 큰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나 어떡하지!” “나 어디로 가지!” 라는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L.A. 로 오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일생에 3번의 기회와 3번의 어려운 고비가 있다고 합니다. 어려운 고비를 맞아 “위기는 기회다” 라고 하며 잘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러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어려워하며 목숨을 끊는 경우가 있습니다.

5의문이 있다고 하죠. 동서남북이 다 막혔을 때 하늘의 문이 있다고 합니다. 하늘마저 외면한다는 생각이 들면 L.A.로 오십시오.

, 그냥 비행기 타고 L.A.로 오시면 됩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고 길도 몰라도 됩니다. 공항 밖에 나오시면 한인 택시(정식 택시가 아닌 일반 승용차) 기사들이 닥아 오면 그냥 타고 코리아타운으로 오세요. 한인이 운영하는 적당한 호텔에서 며칠 쉬면서 생각도 가다듬고 맛있는 것도 먹고 구경도 다니고 그러세요.

한국의 신문과 방송에서 자신의 나쁜 짓 내용이 보도 되어도 걱정 마세요.

여기는 L.A.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근원이 도망쳐 온 사람들이 만든 나라 아닙니까? 깨끗하기로 이름 난 청교도들 그렇죠. 그 사람들도 알고 보면 도망자 입니다. 바이킹의 후예, 그들 옛날 해적들 아닙니까?

그리고 미국에서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코리아타운에 나타나셔도 그냥 다니세요. 아무도 바로 쳐다 보지는 않습니다. 힐끔 힐끔 뒤로 보기야 하겠지만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L.A.에 사는 한인들 한국에서처럼 한가하게 다른 사람들 쳐다 볼 시간 없습니다. 다들 바쁘게 살아 갑니다. 그리고 유명한 사람들 많이 삽니다. 한국에서의 톱스타가 마켓에 시장 보러도 나오고 마켓 안의 식당에서 음식도 먹습니다.

가끔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이 자기 유명세를 가지고 식당이나 가게를 열지만 이건 착각입니다. 큰 착각을 한 겁니다.

L.A. 사는 한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이 있어 여기 와서 삽니다. 아이들 교육 운운 하지만 그것 대부분이 핑계 입니다. 자세히 보면 깨어진 가정이 너무 많습니다. 깨어지고 찢어지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L.A.에 오시더라도 이해하여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이고 그 말 많은 L.A.에, 예 맞습니다. L.A.에는 한국 사람들 많이 살고 한국의 TV도 실시간 공중파로 방영됩니다. 그래도 여기는 미국 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해 줍니다.

누구누구가 L.A.에 있다더라, 이런 기사는 본국에서는 보도될지 모르지만 L.A.에 있는 한인들의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이런 내용 보도 안 합니다. 그냥 불문률입니다.

“나 이제 어디로 가지?” 하실 때 L.A.로 오세요. 부도가 나고 스캔들이 나고 억울하거나 진짜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L.A.로 오시면 다 해결됩니다.

내게 돈 받을 사람, 내가 빚진 사람을 L.A.에서 만나도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미국이라는 나라는 함부로 폭력을 쓰거나 위협을 하지 못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돈 내라고 전화도 못하는 나라입니다. 물론 휴일에 전화 걸어 “내 돈 갚아라”고 못합니다. 불법입니다.


도피성 [逃避城, cities of refuge] 이라는 말이 구약 성경에 나옵니다.

Then the Lord said to Joshua:(1)"Tell the Israelites to designate the cities of refuge, as I instructed you through Moses, (Joshua 20:1,2)

그러니 수천 년 전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죽여 자기도 죽어야 할 죄를 지어도 도피성으로 가서 피할 수 있게 이스라엘 48개 성읍 중 6곳을 택하여 어느 곳에서나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 32km에 두었다고 합니다.

나 이제 어디로 가지! 라는 생각이 드시면 L.A.도피성에 오시어 피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비자 체류 기간은 3개월 입니다.

그러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자기 지나 온 길도 되돌아 보기도 하고 그러세요.

지금도 많이 어려우신 분 계시면 그냥 비행기 타세요.

세월이 약이다. 웬만한 건 시간이 다 해결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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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방송 채널에서 가끔 세계 여행 프로를 보는데 마추피츄를 소개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계의 불가사의중 하나라고 하죠.
마침 National Geographic 4월호에서 Inca를소개하는 그림 몇개를 소개합니다.




호숫가에서 식당 주인이 쉬고 있는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 막대기에 걸어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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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희목사 설교 중에서(재생시간 3분15초)

逸 士 遺 事

바느질로 두 자식을 잘 가르쳐 진사에 급제시키고 임종을 맞으며 두 아들을 불러 앉히고 은이 가득한 솥을 취하지 않고 도로 묻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취하시지 않았습니까" 라는 물음에 어머니는  

"財는 災다.

아무런 노력없이 큰 재물을 얻으면 반드시 뜻밖의 재앙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이 나서 마땅히 궁핍한 것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너희들이 어릴적부터 의식의 안일에 습성이 들면 공부에 힘쓰지 않을 것이요

만약 가난하고 어렵게 자라지 않으면 어찌 재물이 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겠는가.

그래서 내가 집을 옮겨 스스로 단념한 것이다.

지금 집에 저축된 약간의 재물은 모두 나의 열손가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니

창졸간에 눈앞에 닥친 재물과는 비할 것이 아니다. 하고 숨을 돌렸다. 
 

물론 그 은솥이 묻힌 집을 끝내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金學性, 1807~1875 
 
본관 청풍. 자 경도(景道). 호 송석(松石). 시호 효문(孝文). 참판 동헌(東獻)의 아들.

1828년(순조 28)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33년 대교(待敎), 1841년(헌종 7) 대사성,

이듬해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1844년 예방승지 ·이조참판, 1848년 한성부판윤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

1849년 철종 즉위 후 호조판서를 지냈다.  그 뒤 우참찬(右參贊) ·형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거쳐,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뒤에도 계속 중용되었다.

1864년(고종 1) 의금부판사 ·규장각제학 ·홍문관제학 ·상호군(上護軍) ·좌찬성,  평안도관찰사 ·중추부판사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편저에 《청풍김씨세보(世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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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즈에 재미난 그림들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이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엉뚱하기도 하지만 만든 사람들이야 많은 생각을 하여서 공들여 만들었겠죠.






New York Times 기사 원문에는 많은 그림들이 있습니다
기사 바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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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Times를 보다가 인상깊은 사진들이 있어서 그 중 몇개를 소개합니다.

전체 사진과 더 자세한 것을 보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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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 있는 나성영락교회 찬양대 모습입니다.




벧엘 찬양대 "주 십자가"
2010.3.14. 3부 예배



갈릴리 찬양대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2010.3.14. 2부 예배



임마누엘 찬양대 "하나님 사랑 알게 하소서"
2010.3.14. 1부 예배



호산나 찬양대 "만물의 찬양"
2010.3.14. 4부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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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블로그님들의 글을 읽다 보면 믹시가 문제가 있다고들 하여도 내 믹시는 아무 탈이 없으니 그저 남의 일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내 일이 되다 보니 열 너무 받습니다.




mixup을 두개 달고 나옵니다. 이것도 처음 며칠은 나오지 않더니 글쎄 달고 나올 때 2개씩이나



더 큰 문제는 My mixsh 입니다. 여기서 포스트를 클릭하면 " 존재하지 않는 컨텐츠입니다" 라는 메시지가 나옵니다.
그래서 감추기를 했는데도 감추기가 안됩니다. 좀더 밑으로 내려 가 보면 같은 포스트가 보이며 여기서는 정상적으로 작동됩니다.
덧글로도 알렸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혹시 아신다면 좀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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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혼 조건이 많이 바뀌어 지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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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의 친선대사인 탤런트 최수종씨가 아동 결연 캠페인을 위해 LA를 방문했습니다.



굿네이버스의 친선 대사인 그는 "최수종씨와 함께 '동행'이라는 주제로 간증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감사한인교회, 베델한인교회, 남가주 동신교회와 나성열린문교회에서 열렸습니다.


재생 시간 22:41 나성열린문교회 간증 편집/원문 보기는

http://www.laopendoor.org/bbs/board.php?bo_table=vod4&wr_id=12



그는
"이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아야 하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알아야 한다. '창피하게 뭐하러 얘기하냐'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지금 세상에는 힘든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함께 도우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기부금을 내는 것이 얼마를 냈으니 우리를 봐달라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땀흘려 번 돈 우리 식구들이 밥도 먹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눠주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나눔은 당연한 것이다." 라고 합니다.

 

1985년 콜로라도 주에서 유학하던 때 아버지가 돌아 가셨고  유학을 포기하고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최악의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추운 날씨인데 집이 없어서 고속 터미널 벤치에서 잠을 잔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남루한 차림의 사람이 '신문을 덮고 자면 따뜻할 것'이라며 덮어주고 가더군요. 의문이 들었죠. 나보다 더 허름한 옷을 입은 저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갖고 신문을 주고 갔을까. 그 때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나중에 돈을 벌면 저보다 힘든 사람들을 위해 나누며 살겠다구요."

그 이후 틈틈이 소년소녀 가장과 어려운 노인들을 찾아 돕게 됐고 좀 더 체계적으로 돕고 싶은 마음에 연을 맺게 된 곳이 굿네이버스였다고 합니다.

"경제도 어렵고 힘들지만 우리보다 더 배고프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지금 현실이 힘들지라도 한 번 뒤를 돌아보고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돌아보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습니다.

굿네이버스는 UN이 공인한 한국 국적의 국제구호개발 NGO로 국내와 해외 23개국에서 사회복지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데 미주 굿네이버스는 2007년 설립돼 한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나눔 실천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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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 Panic Disorder

전체 인구의 1.7%가 경험

여자가 남자 보다 3배




재생시간:4분
곽선희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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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창

여러 이야기 2009. 7. 26. 07:13

오래 전 지방의 시장에 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시장에서 몇 가지 장을 봤는데 생선 가게에서 좋은 생선을 골라서 사려니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더 주겠다고 해도 안 된다. 다듬어 주지도 못한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육점에서도 살코기만 팔지는 않는다. 주는 대로 가져가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그래도 소박한 상인들의 인심 좋던 시절이었죠.

 




재생시간:4분

곽선희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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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을 떠난 지 오래 되어 한국의 실정을 잘 모르나 최근 한국의 국세청장 인사 청문회 소식을 들으며 생각 나는 게 있어서 올려 봅니다.

 

이 내용은 정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국세청장 인사청문회가 7월8일 열렸고 아래 소개되는 설교는 7월 5일 나성영락교회 주일 설교 말씀입니다. 김인수목사님은 현재 미주장신대학 학장이며 초빙으로 설교하신 내용을 발췌한 내용입니다.


3분1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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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에서 살 때 친구 중 세무서장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친한 친구였기에 지방 근무 시절 내 개인 소유 차를 타고 주말과 주 초 같은 근무지로 함께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세무서장 관용차는 작은 승용차였고 휴일에 관외 지역 운행은 불가하여 시외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 친구는 고시 출신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형편이 어려워 학비는 장학금으로 충당하고 버스 탈 돈도 없어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녔습니다. 그러니 본인은 물론이고 친척들도 거의 여유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공무원 월급 받아서 부모님 모시고 사는데 겨우 겨우 살고 지방의 세무서장 사택에서 밤에 속옷 직접 빨아 입었답니다. 손만 벌리면 돈 줄 사람 아니 주머니에 손 넣고 있어도 억지로 돈 주려는 사람 많았죠. 그 돈 받을 수 있습니까? 받아도 됩니까? 안 받습니다. 못 받습니다.

 

부정이니 뇌물을 떠나서 직원들의 관리 통솔이 불가능 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세무서 직원들 웬만한 주사 급만 되면 빌딩 하나씩  있습니다. 그 당시 세무서장 관용차는 작은  차 였지만 직원들은  집에서 큰 차 탔습니다.

 

일선 세무 직원들은 많은 직원들이 바깥 근무입니다. 그리고 항상 유혹에 접촉하고 있습니다. 관리직의 상관이 항상 따라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긴장하여야 하고 조그만 약점도 있어서는 그 직원들 관리, 감독이 불가능 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한국의 인사청문회는 그냥 참고로 하는 것 같고 무슨 구속력은 없다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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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안성의 하나원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인 기자들에게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Cameramen scramble to take pictures of North Korean defectors at the Hanawon resettlement center near Seoul.

이곳에서 대한민국의 화폐도 배우고 민주주의도 배우고 컴퓨터도 배우고 현금자동 인출기의 사용법도 배우고 피아노도 치고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면서 정착을 위한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가끔 친구들과 옛날 노래를 부르며 북한의 산과 강을 그리며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담배 맛도 틀리고 술 맛도 다르다고 합니다.

 

16,000명의 탈북자들 중 90%가 하나원 출신인데 75%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을 시도 하기도 한답니다.

 

자유가 있고 편안함이 있긴 하지만 자신들이 꿈에 바라던 그런 곳은 아니고 second-class citizen 이며 bittersweet 맛이라고 합니다.

 

한 할머니는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비밀리에 북한의 딸에게 전화를 하였는데 “절대 오시면 안됩니다. 어머니도 우리도 모두가 다 죽습니다" 라고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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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are look inside the Hanawon center for North Korean defec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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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아들 장가 가는 날이 저 사람과 끝나는 날입니다. 하는 부인들이 있습니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아내가 행복해 합니다



재생시간: 4분 40초

한국의 일산교회 김해수 목사의 안식년 휴가중 나성영락교회 방문 설교 중 일부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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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Edison Light Bulb


 

  

왕이 결산을 시작하자 1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나오게 됐다.

그런데 그는 빚 갚을 돈이 없었기 때문에 주인은 그 종에게 그 자신과 아내와 자녀와 전 재산을 팔아 갚도록 명령했다.

  

  그랬더니 종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조금만 참아 주시면 모두 갚아 드리겠습니다.’

주인은 그 종을 불쌍히 여겨 그를 놓아주고 빚을 없애 주었다.

그러나 그 종은 밖으로 나가 자기에게 100 *데나리온 빚진 동료 종을 찾아냈다. 그는 동료의 멱살을 잡으며 ‘빚진 돈을 갚아라’고 말했다.

그의 동료가 무릎을 꿇고 애걸했다. ‘조금만 참아 주게. 내가 다 갚겠네.’

그러나 그는 참지 못하고 가서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동료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이 일을 본 다른 동료 종들은 너무 기가 막혀서 주인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 바쳤다.

그러자 주인은 그 종을 불러서 말했다. ‘이 악한 종아! 네가 나에게 애원하기에 내가 네 빚을 모두 없애 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하지 않았느냐?’

그 주인은 화가 나서 그 종을 감옥 관리들에게 넘겨주며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뒀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지금 용서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오디오 출처:나성 영락교회 림형전목사 설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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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노무현 왜 죽었어?

 

오래간만에 아이가 전화에서 하는 말입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미국에서 공부하였기에 “서거”, “돌아가셨다”는 말은 모르는 아이니 양해 바랍니다.

 

, 그래. 하고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바쁘니 e-mail 보내마 했습니다. 그 아이는 대통령 되기 이전 가끔 제가 고인의 얘기를 하였기에 제가 고인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아이입니다. 아래 글은 우리 막내 아이에게 보내는 e-mail 내용입니다.

 

노무현, 그는 가족들과 친구, 친지와 여러 사람들과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내 주었다. 자기 목숨을 던져 마지막 승부를 하였다. 그리고 이겼다.

 

내가 아는 그는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길 밖에 없었다. 길이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안다. 목숨을 내 던지는데 감옥 가는 것 뭐 무서우랴. 그런데 자기 한 몸 감옥가면 해결되면 좋은데 이건 반대로 감옥 가면 모든 사람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다닐 때 진영에서 열차 통학을 하였다. 새벽 다섯 시 조금 지나 기차를 타고 학교에 가서 도시락 한 개 먹고 저녁 아홉 시 가까운 시간에 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는 그런 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도시락 두 개 갖고 다니지 할지 모르지만 보리밥에 김치 도시락 한 개도 겨우 싸는데 빵을 사먹지 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겨울 철에는 산골 바람이 세기도 하지만 낮 시간이 짧아서 학교 근처에서 자취생활 하였으니 쌀자루 울러 메고 다녔다.

 

겨우겨우 졸업하여 취직하였으나 변변한 기업체 하나 없던 그런 시절이라 늦은 나이에 고졸 독학 변호사가 되었다. 이 세상은 줄이 있어야 하는데 판사로서도 그 꿈을 펼 수가 없었다. 아무런 줄이 없지 않느냐? 명문 고등학교만 졸업했어도 줄이 있는데 그게 없었다. 진영이라는 시골 출신, 상업고등학교 졸업에 친가나 처가에 누구 하나 도와 줄 사람은 커녕 도와 주어야 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변호사 개업을 하였다. 처음에는 지역의 부산상고 출신 동창들이 많았기에 변호사 선임을 받기도 하였으나 그것도 잠시, 인권 관련 변호를 하면서부터는 아예 “노무현이에게 맡기면 안 된다. 무조건 진다” 라는 말이 나왔었다. 그 당시 세상은 그런 세상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돈이 되는 소송들은 들어 오지를 않고 돈 없고 힘 없는 서민들 노동자들의 억울한 사람들의 변론을 맡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 당국의 억압과 부당한 일들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인권과 사회 정의를 찾는 일들을 하게 되었었다.

 

그가 후에 대통령 선거에서 호남 지역의 표를 많이 얻게 된 것도 창원과 울산 지역의 많은 근로자들이 호남 사람들 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대통령 재임 시절 600만 불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돈 받을 사람이 아니다. 학교 다닐 때 집에서 기차역까지 뭐 버스나 전철로 바꿔 타는 것 아니다. 캄캄한 밤길을 걸어 다녔다. 범일 역(간이역 비슷하다)에서 학교 까지도 걸어서 다녔다. 인권 변호사, 야당 시절에는 아주 조그만 문제만 생기면 바로 감옥으로 가는 그런 시절을 지낸 사람이다. 사치와 허영 낭비 이런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대통령 되기 몇 년 전 지하철 타고 다녔다. 서울 역삼 전철역 부근 하로등선이라는 막걸리도 팔고 식사도하는 음식점 경영했었다. 국회의원 출마했다 떨어지고 김홍신, 김정길씨 등 세 사람 합작이었다

 

짐작컨데 600만불은 권여사가 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대통령은 몰랐었고, 고위 공직자들에게 돈이나 선물을 직접 전달하는 게 얼마나 어렵다는 것은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총리 급 이상이 참석하는 공공 연회나 식장에 들어 가려면 신원조회가 끝나야 하도록 되어있고 대통령 가까이 어떤 물건을 가져 가려면 그 절차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냥 돈 가방 들고 가서 주면 되는 그런 게 아니다.

 

권양숙여사, 부산의 연지 럭키화학 공장 다녔다. 지금의 LG의 창업 시절이었다. 그 당시 조그만 공장이었으나 그래도 월급 미루지 않고 제때에 주는 그런 좋은 직장이었다. 회색 작업복 입고 머리에 수건 쓰고 조그만 쪽문으로 들어가서 12시간을 일하는 그런 공장이었다.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이 일하는 공장인데 주간 일주일 야간 일주일 교대로 일하였는데 월급 적게 주려고 1년 일하고 나면 그만 두어야 하고 바로 다음날 다시 입사하여 일하는 임시 일용직 노동자였다.

 

돈을 벌지 못하는 인권변호사 시절, 국회의원 출마하여 낙선, 야당 국회의원, 그런 시절을 보내면서 자식들에게는 그런 경제적인 어려움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그런 일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600만불 사건이 알려진 후에 노 전대통령이 알았다고 하더라도 크게 나무지는 못했으리라 짐작한다. 자식들 키우고 공부 시키는 것 누가 어떻게 한 건데 하면 그래 미안하다. 정도 얘기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1억 짜리 시계 얘긴데 그런 시계 받을 사람 아니다. 만약 받았다면 그냥 좋은 시계 하나라고 생각했을지는 모르겠다. 측근들의 얘기로는 본 적도 없었다고 했다. 논 바닥에 버렸다는 얘기는 안 받았다고 해 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검찰 측에서 주었다고 주장 하니까 그냥 “응 그래요 논바닥에 버렸다” 라고 했을 것 같다.

 

변호사라서 죽었다.

그는 변호사였다. 그리고 승부사였다. 정면으로 돌파하는………..

처음부터 검찰 측에서는 주변의 약하고 만만한 사람들부터 하나 둘씩 잡아들였다. 그리고 권여사 마지막으로 노 전대통령.

 

주 목표는 노 전대통령인데 그 가지들을 먼저 치고 자르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노 전대통령 이외의 측근들은 거의 참고인으로 불려갔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말한다. 설령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숨겨 두었다가 법정에서 그것도 맨 마지막에 그것을 제시하여 재판에서 승리하여야 하는 것이 변호사가 하는 일이다. 돈이고 시계고 모든 것은 법정에서 재판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설령 1심에서 유죄가 되어도 2심 3심이 있다. 그 때 까지는 정권이 대통령이 바뀌게 되는 것이고 또 사면이란 게 있다.

 

그런데 왜 죽었나요.

한국의 검찰은 미국과는 달리 수사권이 있다. (미국의 검찰은 수사권은 없고 기소권 만 있는 나라이다) 노 전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이었고 부인, 아들, 딸들은 참고인 자격이었다. 그래서 피의자가 죽으면 공소권이 없어진다. 그래서 검찰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즉 아무런 조사도 더 이상 법적으로 정식으로 받지 않아도 되고 600만 불의 돈에 대해서도 반환 압수 벌금 등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한다. 정식으로, 법적으로.

 

그리고 그는 따뜻하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권력에서 물러 난 후에는 그 동안 가까이 있던 사람, 신세 진 사람들도 찾지 않고 멀리하게 된다. 그것은 의리의 문제도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공직자나 사업가가 권력에서 물러 난 사람을 찾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여러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죽음으로 주변에서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 좀 더 자유스럽게 되었다. 그리고 관련하여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재판에서 관련한 실질 세력이 없어졌기 때문에 상당히 유리한 재판을 받게 되리라 생각된다.

 

그가 내린 결론은 내가 살아 있어봐야 내 가족들과 친구, 친지들에게 별 도움을 줄게 없다. 재판에 가서 내가 이겨 봐야 국력의 손실, 국가 신인도의 손실이 더 크다. 정면으로 승부하자. 내 목숨을 건다. 던진다.

이런 생각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 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리고 무슨 일을 옳고 좋은 일 꼭 해야 하는 일이라도 그일 하려면 얼마나 어려운데

대통령 몬해 묵겠다.(갱상도 사투리) 그렇다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탄핵사건에서 복귀하면 바로 사퇴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렇게 자신 있게 얘기 했었다.

 

탄핵 재판 판결 나는 날 대통령직 사퇴한다. 확신한다

 

왜 그때 사퇴하지 안 했을까? 여러 가지 꼭 해야 할 일이 많아서였나? 국가가 혼란스러워 질까 염려되어서, 아니면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였나?

슬프고 원망스럽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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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언론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관련 기사들을 크게 보도하고 있으며 오바마 대통령도 애도를 표하고 가족들에게 위안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WASHINGTON (AFP) — President Barack Obama said Saturday he was saddened by the death of South Korean former president Roh Moo-hyun, and praised his contributions to South Korean-US ties.

Obama said, "I was saddened by the news of the death of former President Roh Moo-hyun of the Republic of Korea.

"During his tenure, President Roh contributed to the strong and vital relationship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Republic of Korea. On behalf of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I offer my condolences to his family and to the Korean people," Obama said in a statement

 

New York Times에서는 600만불 정도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업가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저를 잊어 주세요” 하는 기사와 함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의 수 억 달러를 긁어 모았던(collecting이라고 표현) 것과는 달리 적은 액수의 생활비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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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n Ex-President Kills Himself  2009/5/23


NYT 지난 검찰 조사 관련 기사 2009/4/29
Former S. Korean President Apologizes for Scandal
한국에서는 지난 30년 동안 모든 전직 대통령들이-All former South Korean presidents - 스캔들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전두환 전대통령과 노태우 Mr. Chun and Mr. Roh Tae-woo, The two Rohs are not related. 전 대통령들의 감옥살이와 두 김 대통령의 아들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굉장히 큰 돈을 받았으나 노무현 대통령은 Park Yeon-cha, the businessman으로 부터 비교적 작은 돈을 그의 아내가 빌려 형제와 아들에게 주었다고 보도 했습니다.

 

모든 전직 대통령들의 스캔들은 바로 직후의 대통령에 의해 구속되고 처벌되었으며 이번 선거에서 Lee Myung-bak의 한나라당, Grand National Party 는 다섯 개 중 1석도 차지하지 못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하여 한국의 국가 이미지는 한없이 추락되었으며 돈을 주고 뒤에서 때리는 한국 사람, 권력 앞에서 굽실 굽실 대다가 그 권력 놓으면 다음 대통령이 때리고 짓밟아 자살 까지 몰고 가는 그런 나라가 되었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꼭 같은 사람입니다. 한국은 이제 국제적인 큰 비즈니스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상인들이 말은 안 해도 생각할 건 다 생각합니다. 다 끝난 후 뒤에서 뒤통수 칠까 두려운 무서운 한국 사람이라는 인상


이미 때는 늦었고 지난 일이지만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 헌법에는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재판 없이 사면할 권한이 없다. 일단 재판을 받고 형을 선고받은 후에만 특별사면이 가능하다. 현행법상 유일한 한 가지 길은 있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법무부장관이 검찰청법 8조에 따라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발동해 노무현사건에 대해 일절 기소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지시할 수는 있다"면서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현실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이 경우 법무부장관의 직권남용 논란이 불가피하며, 어느 장관도 정치적·역사적 후폭풍을 감당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권 때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강정구(동국대 교수)씨의 보안법 위반사건에서 검찰총장에게 지휘권을 발동,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것이 헌정사상 첫 케이스였다.

궁색하지만 그것을 노 전 대통령 사건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노씨 불기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다면, 또 그것을 실행할 정치적 용기가 있고, 그 후폭풍을 감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정부 전체의 의지로 법무부장관을 통한 검찰의 기소권 행사 중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몇 가지 국민의 공감대를 두드려 볼 부분이 있다.

 

첫째,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雜犯)수준이다. 정치자금도 아니고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다. 
 

둘째, 재판이 진행되는 장기간 온 나라가 이 문제로 시간을 낭비할 가치가 과연 있느냐는 주장도 고려해볼 만하다. 노씨가 '나도 살아야겠다'면서 '사실'문제를 가지고 지루한 법정 공방에 나설 것이 뻔한 지금의 상황에서 경제위기 극복에 바쁜 우리가 그런 치졸하고 남루한 논쟁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가 문제다.

 

셋째,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전직 대통령에 얽힌 뇌물과 법정다툼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어 때로는 주요기사로, 때로는 해외토픽으로 지구촌 언론에 등장할 때 우리의 모욕감, 수치심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로 미국 대통령직을 사임한 리처드 닉슨은 그의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전면적 면죄부(a full, free, and absolute pardon)를 받았다. 후임 포드 대통령은 사면령에서 닉슨이 기소될 경우 재판은 수년이 걸릴 것이며, 그동안 정국의 안정은 크게 깨질 것이고 계속되는 찬반논쟁은 이미 물러난 사람을 더욱 폄하시킬 것임을 적시했다.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의 글에서 요약>

임채진 검찰총장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사람입니다. 아마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가장 많은 고민을 하리라 생각됩니다.

아래 관련 기사들 입니다.


Former S. Korean President Roh Dies in Apparent Suicide

 

Ex-president's suicide leaves S. Korea with questions about its leaders

 

Former S. Korean President Roh commits suicide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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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국의 Mother’s Day 입니다.

 


네 살과 여덟 살 두 아이의 엄마가 아이들로부터 꽃 선물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적은 돈으로 약간은 시든듯한 꽃을 사가지고 와서 어머니께 주면서 꽃은 별로지만 리본에 쓰여진 문구가 너무 좋아서 샀어요.

 

Rest in Peace

평안한 휴식, 날마다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하여 산 것이었습니다. 그렇죠 어머니는 날마다 힘들고 쉬는 날이 없죠.

 

그런데 이 어머니는 미국 사람입니다. 그냥 말문이 막혀 숨도 멈출 지경입니다.

Rest in Peace. 장례식용 꽃이었습니다.

 

 

밤 사이 눈이 많이 내린 날 아침 수잔은 집밖의 눈을 치우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기 집 앞의 눈을 치우지 않아 지나던 사람이 넘어져 다치면 치료비 물어 주어야 하는 나라입니다.

수잔은 한참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며 땀을 뻘뻘 흘리며 눈을 치우다 이웃이 지나면 인사도하고 한참 신이나 있습니다.

 

옆집 사람이 남편 존은 어디 갔냐?고 물었습니다.

아니 집에 있어요.

그런데 왜 부인이 눈을 치우고 있어요?

누가 눈을 치울 것인가 하는 제비 뽑기를 했답니다.

– 당신이 지셨군요.

아니 내가 이겼답니다.

 

아이들 돌보는 것 보다 눈 치우는 게 쉽다는 뜻이겠죠.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생각 없다,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돌아가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엄마가 되고, 엄마는 액자 속의 사진으로만 남았을 때야 알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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